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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 홍승현 사진展
날짜 : 2007-03-17 (토) 12:04 조회 : 3082


모던 타임즈
홍승현 사진展
2007_0321 ▶ 2007_0327
초대일시_2007_0321_수요일_05:00pm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20_5789
suncontemporary.com


홍승현_흑백인화_15×19"_2007

현대성의 가면 벗기기 ● 홍승현의 사진들은 단사진들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두 장씩 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짝짓기는 보는 이들에게 친숙함이 아니라 낯설음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나란히 병렬된 변기들과 수도꼭지들을 묶어서 보여주는 한 쌍의 사진처럼, 서로 짝 지워진 두 장의 사진이 얼핏 보기에 서로 아무런 관계를 지니지 않는 이질적 오브제들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서 홍승현의 사진 짝짓기 안에서 개개의 사진들은 서로 이미지의 충돌을 일으키고 그 충돌 효과는 보는 이의 시각적 경험을 연속적이 아니라 불연속으로 만든다. 이러한 충돌적이며 불연속적인 이미지의 짝짓기는 홍승현의 사진 보기에서 두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홍승현의 사진들 안에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면 그 메시지는 각각의 사진들이 아니라 두 사진들 ‘사이’에 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 메시지는 두 사진들의 순접효과가 아니라 충돌효과를 통해서 전해진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이미지들 사이를 연결하는 모종의 관계를 보는 이가 스스로 발견해 가는 과정 속에서 경험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홍승현의 짝사진들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은 무엇이며 그 발견의 경험을 통해서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


홍승현_흑백인화_15×19"_2007


홍승현_흑백인화_15×19"_2007

홍승현의 사진들은 우선 보는 이로 하여금 짝 지어진 두 장의 사진들을 자세히 ‘비교’하게 만든다. 일상 속에서는 서로 무관한 목적과 용도로 분리되어 있어서 하나로 묶어 주목할 필요가 없는 공간 혹은 사물들이 홍승현의 의도적인 사진 짝짓기를 통해서 서로 꼼꼼히 견주어 보아야 하는 비교 대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 일단 그렇게 특별한 비교 대상으로 짝 지어지면 사진 속의 두 대상들은 더 이상 개개의 무관한 사물이 아니라 모종의 관계를 지니는 오브제들로 보는 이에게 다가오는데, 그 모종의 관계를 추적하는 가운데 우리가 제일 먼저 발견하는 건 두 오브제들 사이의 ‘시각적 유사성’이다. 예컨대 무심코 커피를 뽑아 마시는 커피 자판기와 아무 생각 없이 타고 내리는 엘리베이터, 줄지어 늘어선 공중 전화기들과 나란히 병렬되어 부착된 전기 개폐 스위치들은 서로 용도가 다른 별개의 사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외형상 얼마나 비슷하게 닮아 있는가. ● 하지만 두 오브제 사이의 그러한 유사성이 다만 외형상의 닮음에 대한 시각적 확인에서 멈추는 건 아니다. 그 시각적 유사성을 응시하는 사이 우리는 곧 그 유사성이 단지 외형상의 유사성이 아니라 매우 엄격하게 개개 사물들의 속성을 규정하는 ‘구조적 기능성’에서 비롯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채굴된 석탄을 실어 나르는 광산의 운송 통로와 높은 곳을 쉽게 오르내리도록 완만한 경사면으로 축조한 도로가 기능상 아무런 차이가 없듯이 사람을 실어 나르는 지하철 선로와 화물들을 운송하는 콘베어 벨트 사이에도 아무런 기능적 차이가 없다. ● 이처럼 시각적 유사성과 구조적 기능성의 발견을 거쳐 우리가 홍승현의 사진들 속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하게 되는 건 사진 속의 다양한 오브제들을 예외 없이 통제하고 있는 사물관계, 즉 ‘획일적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물관계의 시스템에 대한 확인은 우리가 편하게만 여겨왔던 일상의 환경이 구석구석 획일적인 기능성으로 시스템화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우리들의 일상적 삶 또한 사물들의 기능관계에 맞추어 빈틈없이 획일화되어 있음을 놀라움으로 깨닫게 만든다. ● 하지만 사물관계의 획일성에 대한 놀라움은 일상 환경의 획일성에 대한 놀라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놀라움은 더욱 증폭되어 미처 우리가 홍승현의 짝사진들 속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사실, 즉 ‘인간의 부재’라는 암묵적 메시지와 만나게 만든다. 홍승현의 사진들 속에는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주인인 사물공간에서 사람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움으로써 소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은 물론 많다. 그러나 그러한 사진들이 대부분 단사진들 안에서 사물과 인간 사이의 소외관계만을 테마화 하고 있다면 홍승현의 짝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소외효과는 사물과 사물들 혹은 사물과 인간 사이의 소외관계를 깨닫게 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 일상 공간 안에서 사람의 흔적을 지워버린 그의 사진들은 자연스럽게 사물들 사이의 소외관계를 사진들 자체에서는 생략되어 있는 또 하나의 관계,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까지 확장시킨다. 사물관계로부터 인간관계로 접속되는 그러한 시선의 확장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헐벗은 진실은 그러나 매우 가열하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의 차이를 없애고 오로지 기능성만으로만 획일화 된 사물관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너와 나에게 강요되는 생존 방식 - 저마다 개인임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개개인의 고유성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의 기능으로만 존재하고 또 그렇게만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우리들 실존의 맨 얼굴을 직접 목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헤겔은 일찍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서 역사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인간은 이성과 기술의 도움으로 자연에의 예속을 벗어나 자유와 행복의 이상향을 스스로 완성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헤겔의 예언대로라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모던 타임즈는 유토피아의 시대이어야 하고 우리는 당연히 그 유토피아의 주인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라고 불리는 테크노롤러지의 유토피아 안에서 우리는 과연 주인인가? 아니면 빈틈없는 기능성으로 통제되는 획일적 환경 속에서 사물관계를 따라 맹목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물일 뿐인가? 현대성의 가면을 벗겨내면서 현대적 일상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홍승현의 짝짓기 사진들은 그러한 가열한 질문을 메시지로 던지고 있다. ■ 김진영

*자료출처:네오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