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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 - A Sense of Space 서지연展 / SEOJIYEON / 徐志蓮 / photography
날짜 : 2011-06-18 (토) 12:20 조회 : 2405


서지연_Love_피그먼트 프린트_100×170cm_2011


Listen - A Sense of Space
서지연展 / SEOJIYEON / 徐志蓮 / photography
2011_0629 ▶ 2011_0705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Listen - A Sense of Space "모든 소리는 음악이며 모든 행위는 음악이다." (존 케이지(J. Cage)) ● 사진은 빛을 이용한 이미지를 카메라를 통해 고정시켜 얻게 된다. 이미지를 얻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어떻게 하면 실체가 없는 음악이라는 장르를 사진이라는 매체에 그것도 완전한 한 곡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나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매체적인 특성을 이용하였다. 음악은 울리는 동시에 이미 과거가 된다.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찍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이다. 이러한 과거에 행해진 모든 예술적 행위와 소리들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었다. ● 인간의 감각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뇌에 전달되면서 연상 작용을 거쳐 감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한 감각 중에서도 우리는 대부분의 정보들을 시각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시각적인 이미지에 치중하다보면 다른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켈 뒤프렌(Mikel Dufrenne)은 눈 감각의 순수성을 부인하면서 "가시성은 순수할 수 없고 눈은 결코 주권자가 아니다. 따라서 눈은 본 것과 구별되지 않고 뒤섞여서 몸 전체를 자신의 경험에 결합시켜 보이는 것을 남김없이 읽을 수 없다. 더구나 눈은 독점을 주장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시각은 뇌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감각을 일깨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의 움직임, 소리, 공간 등이 통합되어 시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청각에 자극을 준다. 그것은 또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면서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게 되는데 이를 공감각이라 한다. 쉽게 말하자면 공감각은 한 감각기를 통하여 다른 감각기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시각과 청각은 물론 촉각, 운동감, 거기에 미각이나 후각까지도 동시에 체험함으로써 다른 감각으로의 전이를 쉽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 말은 2차원적인 이미지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공감각의 경우, 이미지 외에도 다른 감각들이 추가되면서 비로소 다차원적인 이미지로의 연상이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효과는 배가 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주변의 모든 소리는 시각만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까지도 세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한다. 이 많은 소리들을 느끼는 감각이 바로 청각이다. 청각은 소리의 진동을 느끼는 중요한 감각기관이지만 박자(Beats), 진동(Vibrations), 파동(Pulses)은 청각보다는 촉각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리게티(Ligeti György Sándor)라는 작곡가는 '음악은 내게 일차적으로 직관적인 그 무엇이다. 그 후에 사색적인 작업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순수하게 음향적인, 음악적인 비전이 구체화된다. 나의 음악은 순수주의적(Puristisch)이지 않다. 엄청나게 많은 연상들로 더럽혀진 것이다. 나는 완전히 공감각적으로 사유한다.'라고 하였다. 리게티의 말처럼 음악은 순수한 소리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이되는 공감각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음악은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으로 만들어 내는 행위이다. 우리는 소리를 통하여 주변세계를 의식하고 소통하고 표현한다. 소리는 사물과의 결합, 사물의 움직임들이 공기분자의 파동을 통해 번져나가는 것을 뜻한다. 소리는 인간을 감성적으로 만들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된다. ● 모든 소리는 점에서 출발하여 선으로 이동하며 그 선의 흐름들은 운동감과 리듬감으로 확장된다. 그 리듬과 파동은 피사체를 통과하면서 사진에 뚜렷하게 여러 개의 층을 새겨 넣는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적인 행위는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확연히 다르다. 사진에 나타난 층들은 피사체의 특성 상 언제나 우발적인 요소로 존재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반복 그 자체가 아니라 반복을 행하는 행위 자체이다'라고 하였다. 사실 음악가들의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행해지는 무한한 음악적인 요소들은 연주행위를 할 때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그때마다 다르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남겨진 자취들과 힘의 강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예측 불가능한 무엇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진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며 그것의 우연적 결과물이다.



음악가는 단순하게 손으로만 연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없는 연구와 연습을 통해 소리를 내기 위한 능력을 극대화하고, 음악적 활동인 연주를 통하여 손짓, 몸짓, 눈빛, 표정, 언어를 가지고 자신만의 색을 담은 음악을 표현해 나간다. 그들은 악보의 일반적인 연주양식을 통한 형식적인 음악보다도 각자의 감성에 맞게 재구성된 창의적인 표현방식을 이용하여 청중들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그들은 악보 위에 없던 부분까지도 즉흥적인 연주를 통하여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행위적인 선의 흐름과 함께 음악은 그들 각자의 독특한 음색으로 표현되어 감상하는 사람에게 또 한 번 각기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인간의 삶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사람들이 반응하고 느끼는 것 또한 저마다 다르다. 그러한 음악은 사진을 매체로 하는 나에게 나만의 시각적인 표현방식으로 관람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만들었다. ● 가끔은 내가 보고 듣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음악에 관심을 가진 이후 쭉 내가 가진 생각은 어떻게 하면 사진 속에서 음악적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들의 행위와 연주하는 음악을 동시에 이미지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 사진 속의 피사체들은 모두 연주를 하거나 그들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나는 그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모든 움직임과 연주가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로 저장되는 것을 종종 느낀다. 내 눈은 그들을 바라본다. 또한 내 귀는 대상의 움직임을 통해 촉각적인 감각까지 동원하여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사진 속 음악가들의 행위와 소리들은 모두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는 순간이나 그들의 연주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은 현재겠지만 이미지에 담겨진 모습들은 이미 존재했던 시간들이다. 나는 그 시간에서 벗어나 대상의 존재를 층층이 쌓인 시간의 힘을 빌려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층층이 사진 속에 쌓여진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신비함을 갖춘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음악은 나의 사진에서 단순히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일차적 의미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 모든 예술적 행위는 나와 연주자들의 교감을 통해 만들어진 나를 통해 걸러져 재현된 시각적 이미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연주가 항상 똑같지 않은 것처럼 나와 그들의 교감 역시 계속 바뀔 수 있다. 사진 속에서 음악가들의 몸짓과 소리는 하나하나의 선으로 낙인을 찍듯 자국으로 남는다. ● 이때의 자국은 그들 음악의 흔적(Trace)이자 발자취인 것이다. 나의 사진 또한 그것의 흔적(Trace)이다. 나는 사진을 보는 관람자들이 그들의 자국을 따라 같이 움직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비록 그들의 행위나 연주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음악은 귀로, 눈으로, 온몸으로 들리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나와 연주자들이 교감했던 순간의 모습이자 그 순간을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체험적 풍경인 것이다. ■ 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