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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기계 노순택展 / NOHSUNTAG / 盧純澤 / photography
날짜 : 2012-04-30 (월) 11:43 조회 : 5969


노순택_애국의 길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35cm_2003


망각기계

노순택展 / NOHSUNTAG / 盧純澤 / photography 

2012_0504 ▶ 2012_0610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504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토요일_09:30am~07:00pm / 일요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Tel. +82.720.1524~6
hakgojae.com


망각기계로 죽다, 망각기계로 살다 ● "과거는 죽지 않는다. 과거가 되는 일조차 없다. The past is never dead - it is not even past"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1. '애국의 길'을 걸어 '망각된 기계'가 되다. 이 사진은 슬프다. 선글라스 너머로 렌즈를 응시하는 저 노인은 가히 살아 있는 슬픔이라 할 만하다. 빳빳하게 다린 그의 군복과 자랑스럽게 달려 있는 그의 계급장, 꾹 다문 그의 입술과 주름진 그의 턱이 이 사진의 슬픔을 웅변한다. 그는 왜 이런 절망적인 센스의 옷을 입고 있을까. 이 옷이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왜 거리에 나와 있을까. 자신이 이곳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은 지금과 같은 과잉 근대화된(over-modernized) 국민 국가를 만드는 데 그의 인생을 얼마간 잘라서 썼을 것이고, 그는 고통스럽게, 혹은 기쁘게 자신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해 당연한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 하지만 바로 그 믿음이 그를 외롭게 만들 것이다. 그의 고통과 기쁨, 긍지와 분노는 전혀 공유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더라도, 그의 언어는 정밀한 담론의 형식으로 정리되거나 유의미한 사회적인 파장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와 그의 동지들은 점점 강퍅해질 것이고, 그들은 결국 한 장의 사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물성의 인화지에 프린트되고, 보존 처리된 뮤지엄 매트 보드와 원목 액자로 마감되어 세계를 떠돌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이상한 박물지의 일부가 되어 벽에 걸리게 될 것이다. 변방의 '예술' 사진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 노순택의 사진은 백 년 전 프란츠 카프카가 쓴 문장을 닮았다. 카프카처럼 차갑고 건조하게 묘사한다. 카프카처럼 초현실적이고 어딘가 뒤틀려 있다. 숨결이 닿을 만한 가까운 곳에 어떤 섬뜩한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등장인물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의 이유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질서를 꿰뚫어 볼 능력도 없고, 탈출하는 방법도 모른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피사체였던 노인이 점점 기력을 잃고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이 사진은 죽지 않은 채로 돌아다닐 것이다. 한번 만들어진 사진은 이미 지시하는 대상에서 독립된, 자신만의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의 육체와는 별개로, 사진 속 노인의 육체는 사진 속에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비바람에 방치된 낡고 육중한 기계처럼, 조금씩 탈색되고 풍화되며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기계가 겪었던 고통과 상처에 대해 무감각하듯, 우리는 도대체 그의 삶이 지닌 서사에 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노인은 어떤 공감도 얻지 못한 채, 사진에 갇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