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227건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날짜 : 2003-08-08 (금) 19:37 조회 : 2856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 다시 보는 청계천 -1965, 그후 38년- >


전시기간: 2003년 8월 1일(금) - 2003년 9월 18일(목)
전시장소: 김영섭 사진화랑 3,4층 전관
 
  
  
 
 글, 구와바라 시세이
내가 투숙하고 있던 그랜드호텔에서 걸어서 청계천까지는 600미터 정도였던 것 같다.

로면 전차가 달리는 태평로를 걸어서 동아일보의 빌딩까지 가면 거기에 청계천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그랜드 호텔을 잘 모를 것이다.

1960년대에 남대문을 바라보면 남대문로에서 광화문을 향하는 일방의 기점의 위치에 그랜드 호텔이 있었다.

그 후 호텔은 폐업되고 동성빌딩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청계천의 도로는 태평로와는 다르게 남대문로를 통해서 명동이나 수하동을 거쳐 청계2가의 방향으로 걸어갔었다.

그 시대에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지 않을 때여서

탈수 있었던 교통수단은 택시나 파푸슨이라고 부르는 군용트럭을 개조한 소형버스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청계천의 명칭은 문자로 알 수 있듯이 아름다운 추억의 이조시대의 잔형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1960년대의 청계천은 한마디로 오염된 악취의 하수도였다 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변에는 목조 가옥이 3층 건물로 그것은 마치 하꼬방의 가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나는 전년도 1964년 7월부터 한국을 취재하기 시작했는데 그 해에는 청계천의 사진은 찍지 않았었다.

청계 고가도로의 건설공사가 착공된 것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1960년대의 초라고 생각된다.

청계천을 복개하게 위해 콘크리트의 교각이 세워질 때쯤이었다.

청계천의 명칭처럼 아름답게 흐르는 청류의 천은 콘크리트의 교각이 세워져 별로 좋지 않은 풍경으로 나의 눈에 비쳐졌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성장과 근대화을 상징하는 멋있는 개발의 빛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청계천변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일까?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한국동란의 쯤부터 라고 생각되어진다.

북한에서 전란을 겪고 남쪽으로 피난해 온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청계천은 일본의 식민지시대부터 해방되어 국토의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 계속해서 민족의 가혹한 역사를 보는 살아있는 드라마의 비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청계천변에 촬영은 하루종일 찍은 것은 아니며,

나의 촬영의 범위도 청계천의 전역이 아니고 태평로에서 동대문까지의 약 2킬로미터로 아침과 저녁에 방문하였다.

그것은 아침과 저녁에는 청계천 변의 사람들과의 생활의 표정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낮에는 일터로 나가기 때문에 3층의 목조가옥의 창으로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잘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는 어린이들이 길에서 놀기도 하였고, 청계천의 생활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 후 3년이 지나고, 1968년에 베트남전쟁을 취재하고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다시 청계천에 갔었다.

성동구의 마장동의 방향에 고가도로의 교각이 많이 건설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1971년에 약 6킬로미터의 고가도로가 개통했지만, 나는 그 후에 촬영을 하지 않았다.



1965년은 한국이 큰 격동적인 1년이었다.

한, 일 국교수복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대학생, 시민의 데모로 수도의 서울은 마치 시가전의 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군의 월남전쟁의 파병 등 한국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것 같은 현실을 나의 카메라로 목격 할수 있었다.

1960년대의 후반의 짧은 기간 이였지만, 물이 흐르는 청계천의 원풍경을 세세하게 기록, 촬영해 왔다.

그 때부터 38년간 청계천의 사진은 나의 사진전, 사진집에서 조금씩은 발표했지만,

이번처럼 미 발표작을 청계천이란 제목으로 전시한 적은 없었다.



지금 서울시의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청계천의 복원은 아마도 훌륭한 대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사를 기회로 내가 촬영한 38년 전의 사진이 주목받는 일이 되었다.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과 근대화의 역사를 가늠할수 있는 모습을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김영섭 사진화랑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게 되어서 프로사진가로서 영광으로 생각한다.



3년 후의 2005년9월에 청계천은 살아있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새롭게 태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부터 다시 청계천 걷는 일을 기대해 본다

나는 그 때 청계천과 재회하고 싶다.

청계천의 유역에 살고 있었던 수 천명으로 생각되는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 것일까?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